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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부

성경 번역, 그 역사와 다양한 역본들 - 3. 히브리어 구약성경 출판의 역사 ⓑ

by OTFreak 2020.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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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히브리어 성경이 한순간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저자들과 편집자들을 거쳐서 오늘 우리에게까지 오게 된 것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지난번에 이어 계속해서, 여러 종류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의 다양한 역본들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다양한 역본들 - 헥사플라, 페쉬타, 불가타



    성경 번역, 그 역사와 다양한 역본들

     

       구약성경                                                                                                         

     

    성경 번역, 그 역사와 다양한 역본들 - 1. 구약성경

    목차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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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경                                                                                                         

     

    성경 번역, 그 역사와 다양한 역본들 - 2. 신약성경

    목차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기록자들과 편집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심으로써 구약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을 우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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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어 구약성경 출판의 역사                                                                          

     

    성경 번역, 그 역사와 다양한 역본들 - 3. 히브리어 구약성경 출판의 역사 ⓐ

    목차  지금까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대한 개관을 해 보았습니다. 신구약 성경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오늘 우리에게 왔음을 살펴보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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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히브리어 구약성경                                                             

    "성경 번역, 그 역사와 다양한 역본들 - 3. 히브리어 구약성경 출판의 역사 ⓐ"에 이어서...

     

    오리겐의 헥사플라 조각

       오리겐의 헥사플라 - 히브리어, 헬라어

       주후 2세기~3세기의 인물인 오리겐은 젊어서부터 히브리어 연구를 했던 학자이자 교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부유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던 그는, 후에 셀베루스 황제의 핍박으로 인해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부유했던 가정은 한순간에 가난으로 몰락하고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수많은 책을 모으고 정리한 후 책을 저술하기에 몰두하였습니다. 금욕적이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오리겐은, 대부분의 성경에 대한 주석 책을 기록하였으며 각종 조직신학 책도 저술하였습니다. 

       그는 초대 교부들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신학자인데, 그의 가장 주된 교리 해석은 '로고스'(Logos)에 대한 해석입니다.

       오리겐이 말하는 로고스란 창조의 원리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근본적 존재를 지칭하는 말로 여겨진 그리스의 철학적인 개념입니다. 그런데 오리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이 하신 사역'을 설명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설명한 그는 이 땅에 빛과 말씀으로 사역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난 '말씀'이 '로고스'이며 곧 예수님이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오리겐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읽어가면서부터 당시의 헬라어로 쓰였던 칠십인경 구약성경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오리겐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경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당시에 존재하던 거의 대부분의 헬라어 번역본을 모두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칠십인역 구약성경, 그리고 4개의 중요한 자료들을 차례대로 배열하여 여섯 개의 열로 함께 볼 수 있도록 편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리겐의 '헥사플라'입니다. 헥사플라는 여섯 개의 칸을 만들어 구약성경에 대한 각 번역본들을 기록하였습니다. 헥사플라의 배열 순서는 "히브리어 본문 - 히브리어 본문의 헬라어 음역 - 아퀼라 번역본 - 심마쿠스 번역본 - 칠십인역 - 테오도티온 번역본"입니다.

       사실 헥사플라는 쪽수로 약 6,500여 쪽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리겐이 혼자서 작업한 것은 아니고, 10여 명이 넘는 동역자들과 함께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헥사플라는 주후 638년까지 가이사랴의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안타깝게도 이슬람 제국의 침략 도중에 사라져 버렸고, 그의 헥사플라를 옮겨 쓴 필사본의 일부 사본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에 대한 오리겐의 열정과 성실함은, 지금도 흉내내기 힘든 헥사플라라는 귀중한 성경책을 기록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리아 역본인 페쉬타의 모세오경 부분

       페쉬타 - 시리아어

       구약성경의 여러 번역본들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번역본에는, 고대의 시리아어로 번역된 '페쉬타'(Peshitta)가 있습니다. '페쉬타'라는 말은,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다는 의미의 "단순하다" "쉽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주후 170여 년에 사복음서를 시리아의 저술가 타티아노스가 시리아어로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계속해서 성경이 시리아어로 번역이 되었고, 주후 5세기경에는 시리아 지역의 교회들과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널리 읽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리아어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중요한 언어였던 이유는,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인 아람어의 한 종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리아어(아람어)를 사용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아람어를 사용하셨던 것으로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페쉬타의 연대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페쉬타의 한 사본에 주후 459라는 연대 표시가 있었고 이 표시를 근거로 정확한 연대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성경의 역본이 페쉬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페쉬타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신약성경 가운데에서 베드로후서와 요한 2서, 요한 3서와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50여 년 뒤에 개정된 페쉬타인 '필록세누스 역본'(Philoxenian Version)에는 빠졌던 책들이 모두 포함되어 번역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시리아어로 기록된 페쉬타는 계속해서 발견이 되었는데, 1842년에는 이집트 니트리안 사막의 수도원에서 발견된 '쿠레토니아 페쉬타'와 1892년 이집트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발견된 '시내산 페쉬타' 등이 대표적입니다.

       성경의 시리아어 역본인 페쉬타의 가장 큰 중요성은, 초기의 성경 번역본이 페쉬타인 까닭에 성경의 원본의 내용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역사성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제롬의 라틴어 번역본, 불가카

       제롬의 불가타 - 라틴어

       교회가 확장되고 그리스도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활발한 신학적 토론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위해서 공통적으로 읽고 선포할 성경 본문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 필요성에 따라서, 나지란조의 그레고리오가 제롬(혹은 히에로니무스)에게 오리겐과 유세비우스 등의 초기 교부들이 당시의 통용어인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한 중요한 책들을 라틴어로 번역할 것을 제안하였고 다수의 책들을 라틴어로 제롬이 번역합니다. 그 후에 로마의 교황인 다마소 1세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해 줄 것을 제롬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사실 당시 로마 교회 안에는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 여러 개가 있었습니다. 주후 2세기 말에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부터 라틴어 번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이때까지 라틴어 사본이 약 30여 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 라틴어 사본들의 내용이 서로 다르고 성경의 일부분이 빠져 있는 사본들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보는 성경이 다르고 교리가 다르게 되는 일들이 발생하자, 교황 다마소 1세는 공식적이고도 모두가 함께 쓸 수 있는 라틴어 성경을 기록하고자 제롬에게 요청한 것입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제롬은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에서 주후 386년부터 404년까지 라틴어 번역을 지속하였고, 결국 성경의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Vulgata)가 완성되었습니다. 지금도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에는 제롬이 불가타 역본을 기록하던 장소가 남겨져 있습니다.

       불가타 역본은 사실 세 차례의 번역 과정을 거쳤고 유대인 랍비들과 직접 토론을 벌이면서까지 제롬이 심혈을 기울여 라틴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첫 번째의 개정은, '로마 시편'이라고도 부르는데, 칠십인역을 기초로 하여 라틴어 시편 개정판을 제롬이 출판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개정은, 라틴어 역본을 히브리어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개정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개정은 히브리어에서 직접 시편을 번역하였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제롬은 처음부터 다시 원문 성경에서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로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생겨나게 된 불가타 역본의 특징은, 원문에 매우 충실한 정확한 번역본이면서 동시에 일반 대중들에게 쉬운 말인 대중적 라틴어로 번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미 구약성경으로는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이 매우 널리 사용되고 있었기에 불가타 역본이 자리 잡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후 8세기경에 '불가타'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붙여졌고, 종교개혁 때까지 불가타 번역본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가톨릭 교회에서는 불가타 번역을 공식 성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최근까지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인 예배에 사용하는 유일한 성경을 불가타 역본을 사용함으로써 그 전통이 이어져 왔습니다.

       '불가타'라는 의미는 "번역된 출판"이라는 의미이며, 이 단어는 라틴어로 '베르시오 불가타'(versio vulgata)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에서 '불가타'라는 명칭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불가타 역본은, 대부분의 불가타 내용이 제롬에 의해 번역된 것이지만, 일부분에서 번역자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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