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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23 이사야서 설교

이사야 37:21-38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by OTFreak 2020.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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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사야 37:21-38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찬송가 585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

    성경 이사야 37:21-38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부모의 응답                                                                                                     

       중학교 시절,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광고하면서 출시되었을 때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컴퓨터가 이제 막 출시되었던 때인지라 가격도 어마어마하였고 컴퓨터에 대한 인식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부모님께 직접적으로는 컴퓨터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고 애써 둘러 말씀을 드려도, 저나 부모님이나 모두 컴퓨터에 대한 활용도에 무지했기에 필요성을 조리 있게 말씀드리지 못하였고 부모님도 이해하시지 못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 몇 해가 지나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 한동안 버스를 타고서 이모님 댁의 형님 방에서 컴퓨터를 만져보곤 했었습니다. 형님은 전산과였기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서 제가 주로 했던 것은 초창기의 삼국지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과거입니다. 결국 부모님께서 무리를 하셔서 컴퓨터를 사 주셨다 할지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게임이었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요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자녀가 때로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부모님의 허락을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가 요구하는 대로 무조건 들어주는 부모는 자녀를 깊이 사랑하지 않는 부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내용들이 항상 올바른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반응하십니다. 물론 부모님과 하나님의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부모님은 새로운 것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 있고 약한 부분을 많이 가진 존재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는 크나큰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의 마음과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잘 되고 자녀가 기뻐하고 자녀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은 동일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응답을 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이 기도할 때 즉각 응답하시는 경우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말씀조차 없으신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응답하실 때는 즐겁지만, 하나님께서 전혀 반응도 없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때는 절망스럽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실 때도 있고 때로는 전혀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을까요?

     

       때를 따라서 적절하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은 때는, 하나님께서 한 번 더 숨을 고르시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즉시 응답하실 경우, 우리가 교만해지거나 혹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때는 한 번 더 숨을 고르시고 가장 적절한 때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즉시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순간을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때까지,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 순간까지 말입니다.

       바로 그 역전의 순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며 때로는 무관심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는 성도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응답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히스기야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앗수르 제국의 왕인 산헤립과 그의 신하 랍사게의 조롱과 항복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아 든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자신도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가 편지를 펼쳐 놓고 기도합니다. 

       간절하고도 애타는 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하십니다.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린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을 받았으며,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기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응답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앗수르를 오던 길로 쫓아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이사야 37:29, 개역개정 성경)

       기세등등하게 유다를 공격 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한 앗수르 군대를,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다룰 때 사용하는 코뚜레와 재갈로 다스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는 분노와 군사력만 믿고 날뛰는 앗수르를 강제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철수시키시고 왔던 길로 돌려보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행한 모든 행동들을 다 보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심판을 통하여 교만한 산헤립을 벌하시고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는 히스기야를 구원해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산헤립은 결국 죽게 될 것이요 하나님을 붙잡는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적인 현실로 일어났고 히스기야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사 37:36-38, 개역개정 성경)

       산헤립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으로 인하여 싸움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군사를 거의 다 잃었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으며 아들들의 반란으로 허무하게 죽고 맙니다. 자신의 신(神)이요 수호자인 니스록에게 예배하는 도중에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그의 수호신이 자신을 예배하는 사람조차 지켜줄 수 없는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우상에 불과함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반면에, 히스기야의 하나님은 즉각 응답하시며 모든 일들을 친히 주관하시고 히스기야를 승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이처럼 상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응답의 원동력은는 3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사 37:32, 개역개정 성경)

       앗수르의 패배와 유다의 회복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히스기야의 겸손한 기도가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으로부터 모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열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킨아'(קִנאָה)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는, '질투'나 '열정'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개의 계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 주실 때,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고 하시며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요 왕이신데,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신들을 예배하는 일은 하나님의 질투를 불러오는 일입니다. 질투와 동시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깊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이 질투로 표현되어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크고 위대할 수는 없다는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열심을 사모하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모할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보다 우리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지금 이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간절히 기도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사모할 때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하신 질투하실 정도로 뜨거운 하나님의 열심히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도의 응답이 있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경험하는 은혜를 체험하길 바랍니다.

     

    인생의 안개 속에서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을 의지하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도 여러 종류의 갈등과 시험과 유혹으로 인하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복잡합니다. 어떻게 해야 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세상을 이기도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이 되는지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히스기야와 같이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향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을 바라보며,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어서 함께 묵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 전세계적으로 다시 확산되는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는 믿음으로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 우리 자녀들이 일평생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시며, 주의 품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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