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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설교/18 욥기 설교

욥기 17:1-16, 고난은 주님과 함께(찬419장) Overcome the Hardship with the Lord 수요기도회 설교

by OTFreak 2020.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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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목차

     

       예배 전 찬양 : A 슬픈 마음 있는 사람, C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계속되는 친구들의 비난 속에 욥은 깊은 좌절감과 절망을 맛봅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죽음이 자신을 모든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죽음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그가 믿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욥기 17:1-16, 고난은 주님과 함께

     

    찬송가 419장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 되니

    찬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찬양 악보 가사 PPT C코드

     

    찬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찬양 악보 가사 PPT C코드.ppt
    1.14MB

     

    욥기 17:1-16, 개역개정 성경

    1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2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니이까
    4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5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 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12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고난은 주님과 함께, Overcom the Hardship with the Lord

     

    들어가며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질병이 있습니다. 바로 '우울증'입니다. 세계 보건기구의 2016년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인들 가운데 5% 정도인 215만여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그중에 80%는 혼자서 해결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우울증이 더 확장되어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식이장애나 정신질환까지 유발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욥의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 속에서 괴로워하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자신을 변호해 주실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형편은 그대로이며 여전히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고 우울증에 걸려 있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민할 정도이며, 세상을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의 죽음 이후에는 흙으로 돌아가 무덤을 내 아버지라, 구더기를 내 어머니 내 자매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지독한 우울감을 혼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만 여전히 죽음을 생각하며 혼자서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욥 스스로 15절에서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욥 17:15, 개역개정 성경)

    이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미로 죽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라는 소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과 함께 하지 않아도, 주님은 자신과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그에게는 여전히 있었습니다.

     

    본문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고통이 줄어들지 않았고, 상황이 역전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욥은 이제 가만히 죽음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욥이 현재의 모든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오직 '죽음'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욥 17:1, 개역개정 성경)

       소망이 사라진 듯한 욥은 우울함을 감추지 못하고 죽음을 바라봅니다. 심한 우울증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무덤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빨리 이 생명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왜 욥은 죽음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욥에게는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무죄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억울함의 근원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신다는 우울함과 절망감이 있었습니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자신의 친구들마저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핀잔과 비난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욥 17:2, 개역개정 성경)

          또 주변의 온 백성들마저도 자신을 속담 거리로 삼고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 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욥 17:6, 개역개정 성경)

          온 백성들이 자신의 주변을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하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수근수근거리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억울합니다. 비웃고 멸시하니 욥의 심정은 억울해서 죽음으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 이렇게 회복에 대한 소망이 끊어진 욥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었습니다.

          11절을 통하여,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죽음 만이 주변에서 자신을 삼키려 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욥 17:11, 개역개정 성경)

          나의 날, 즉 이 땅에서의 나의 생명은 끝이 났고 더 이상 마음에는 어떤 계획이나 소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가 병이 나으면 이렇게 해야지, 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나면 이런저런 일들을 해야지 하는 소원도 없습니다.

          11절에서, '계획'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잠마'(계획, זִמָּה)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잠마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욥은 목적도 달려갈 힘도 남아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또 '소원'이란, '상속을 받는 것, 상속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말하는 '모라쉬'(מוֹרָשׁ)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오늘날보다도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유산을 상속받는 일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유산을 바라보며 기대하며 살아가는데, 욥에게는 그러한 기대마저 없습니다. 바라보고 기대할 유산도 없고, 설령 유산이 있다 하더라도 바라보고 기대할 힘이 없습니다.

          단지 욥에게 남아 있는 생각은, 죽음만이 자신을 가장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생각, 죽음으로써 흙이 되면 모든 것이 사라지므로 고통도 없고 괴로움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3) 하지만 죽음 직전까지 가 본 사람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스스로 생명을 버리진 않습니다.

          공원묘지에 가 보면 수많은 무덤들이 있습니다. 그 무덤들을 한참 바라보다 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나도 모르게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공원묘지에 묻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참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공원묘지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또 죽을병에 걸렸다가 회복된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 그 기준이 바뀌게 됩니다. 절망의 가장 깊은 곳을 경험한 사람도, 세상이나 사람이 아닌 주님 안에서 참 소망을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나를 버리고 나를 절망에서 건져 주지 못해도, 절망의 순간에 우리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들

       욥은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을 억울하게 비난함으로 인하여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바라보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사람으로 인하여 절망하거나 세상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나를 비난하고 절망스럽게 만드는 그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 눈을 돌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고난은 사람과 함께 할 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절망은, 오직 주님과 함께 할 때만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고난은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나를 찾아 올 고난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고난들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시겠습니까? 마지못해서 괴로워하며 도망하는 마음으로 고난을 맞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준비된 자세로 고난을 맞이하여, 주의 능력으로 고난과 정면 승부하여 승리하시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고난은 주님과 함께 할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을 이겨 나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찬양

       -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D코드)

       - 말씀을 기억하며, 고난이 닥쳐올 때 힘든 일이 우리를 짓누를 때에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정면으로 마주쳐 승리하도록 믿음을 주옵소서.

       -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믿음으로 극복하게 하소서.

       - 나라와 민족, 세계 선교를 위하여, 수해를 입은 이들과 바이러스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 개인의 기도와 가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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