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장 9절-20절,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라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되어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자리였던 밧모 섬이 바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의 환상을 보게 되는 은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도 두려움과 염려가 남아 있을 것이지만, 그 자리가 또한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바라며 새벽예배설교문을 나눕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20절,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라
오늘 이 새벽 시간에도, 세상의 소음이 잠들고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 가장 좋은 이 시간에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지친 심령이 새로워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하루를 살아갈 새 힘과 소망을 얻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혹시 어젯밤 잠자리를 무겁게 짓눌렀던 걱정과 불안을 그대로 안고 일어나지는 않으셨는지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하는 막막함, ‘혹시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건강에 대한 염려, ‘이번 달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재정에 대한 불안, 그리고 ‘깨어진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까지. 이처럼 크고 작은 두려움들은 아침 안개처럼 소리 없이 우리 삶에 스며들어 우리의 마음을 차갑게 식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요한 역시,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절망과 두려움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절망의 밧모 섬 한복판에 있던 요한에게, 그리고 오늘날 두려움의 감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라!”라고 말입니다.
첫째, 고난의 자리는 주님을 만나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은 요한이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습니다. 밧모섬은 아름다운 휴양지가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정치범들을 유배 보내던 척박하고 외로운 돌섬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장 깊은 고립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그곳은 완벽한 실패의 자리요, 끝없는 고통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영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바로 그 절망의 현장에서,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등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주님의 크고 우렁찬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만나는 고난, 즉 나만의 ‘밧모섬’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형벌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가장 선명하고 강력하게 들려오는 거룩한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질병의 침상에 누워 계십니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밤잠을 설치고 계십니까? 관계의 단절로 깊은 외로움 속에 계십니까? 바로 그 자리가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은혜의 장소요, 영광의 주님을 만나는 축복의 자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연약한 우리는 주님의 손에 붙들린 '금 촛대'입니다.
요한이 음성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그는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지극히 영광스러운 ‘인자 같은 이’를 뵙게 됩니다. 그리고 20절에서 주님은 친히 그 비밀을 풀어주십니다.
요한계시록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여기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 바로 저와 여러분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는 스스로를 볼 때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합니까?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작은 시험에도 흔들리고, 세상의 어둠 앞에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금 촛대’와 같이 존귀하고 보배로운 존재로 여기십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영광의 주님께서 저 멀리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지켜보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촛대 사이로 다니시며’ 우리를 친히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심지를 돋우시고, 기름을 공급하시며, 세상의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시며, 그분께서 당신의 몸 된 교회를 영원토록 굳건히 붙들고 계십니다.
셋째, 부활의 주님께서 모든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상상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 앞에 사도 요한은 압도되어 죽은 자 같이 엎드러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그의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으시며 오늘 본문의 핵심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17절과 1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7-18,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아멘! 우리 주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모든 통제권과 주권이 그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나 우리를 위협하는 문제들이 우리 삶의 열쇠를 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조차도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생명과 죽음의 모든 권한을 손에 쥐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붙잡을 때, 우리의 심령 속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담대함이 솟아나게 됩니다.
결론: 두려움의 감정을 넘어, 주님의 손을 붙잡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벽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괜찮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시선을 그 두려움의 감정에서 돌려, 파도를 다스리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봅시다. 나의 고난의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자리임을 믿읍시다. 내가 주님의 손에 붙들린 존귀한 금 촛대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내 모든 삶의 열쇠를 쥐고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굳게 신뢰합시다. 오늘 하루,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담대하게 승리하는 복된 날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하는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두려움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모든 어둠을 소멸하여 주옵소서. 고난 속에서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시고, 주님의 손에 붙들린 존귀한 자녀임을 잊지 않게 하시며, 모든 열쇠를 쥐신 주님만 의지하며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