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7장 16절-27절, 모든 은혜의 시작점 - 매일성경 큐티 10분 새벽설교
혹시 지금껏 가졌던 나의 열정이 공허하게 느껴지십니까? 오늘 본문인 역대상 17:16-27의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이기에'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본문은 나의 열정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 안에서 참 평안과 자유를 얻으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17장 16절-27절, 모든 은혜의 시작점
1. 내비게이션보다 정확하신 하나님
제가 아는 한 집사님은 자녀 교육에 정말 열심이셨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인생 로드맵’을 다 짜놓으셨습니다. “7살엔 피아노, 8살엔 태권도, 10살엔 코딩…” 마치 완벽한 내비게이션처럼 아이의 인생길을 안내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가 10살이 되던 해, 코딩 학원 대신 동네 만화 학원에 등록해 달라고 조르더랍니다. 아이의 꿈은 웹툰 작가였던 거죠. 집사님은 처음엔 뒷목을 잡으셨지만, 이내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내비게이션이 있구나”라며 웃으셨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 성전을 지어드리겠다는 거창하고 선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줄게”라는, 상상도 못 한 역제안을 하십니다. 우리의 열심과 계획이 때로는 하나님의 더 크고 놀라운 계획 앞에서 겸손히 멈춰 서야 할 때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2. 왕의 고백: “나는 누구이며, 내 집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은 다윗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전해 들은 직후, 여호와 앞에 나아가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승리자의 개선가가 아니라, 자신의 실체를 정직하게 마주한 한 인간의 겸손한 독백입니다. 16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역대하 17:16,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이 고백 속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족함과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미약함에 대한 처절한 깨달음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나라는 견고해졌고,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모든 것을 이룬, 정점에 선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 앞에서 자신이 한낱 목동에 불과했음을,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업적과 명성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드러내는 실존적 고뇌입니다. 다윗은 화려한 왕관 뒤에 숨겨진 자신의 본질적 무가치함을 발견한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선한 의도마저 부끄러워지는 경험입니다. 다윗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거절하시고 오히려 다윗의 집안을 영원히 세우시겠다는 상상 초월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 순간 다윗은 자신의 최선, 자신의 가장 선한 계획마저도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초라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발상이었는지를 느끼며 깊은 부끄러움과 함께 문제의 본질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깨달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고통과 유사합니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틀어지고, 나의 열심이 오히려 문제를 만들 때 우리는 깊은 무력감과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3. 성취라는 우상에 빠진 현대인
다윗의 이러한 고뇌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전해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취’라는 거대한 우상을 섬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SNS는 타인의 화려한 성공과 성취를 끊임없이 전시하고 홍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조바심을 느낍니다. ‘무엇이 되었는가(becoming)’, ‘무엇을 가졌는가(having)’가 ‘누구인가(being)’라는 존재 자체의 가치를 그와 같은 외적인 것들이 압도해 버립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교회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마저 ‘프로젝트’처럼 여기곤 합니다. 더 큰 교회를 세우고,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고, 더 화려한 사역을 이루는 것을 신앙의 성공 척도로 삼습니다. 마치 다윗이 웅장한 성전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했던 것처럼, 우리도 가시적인 성과와 업적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를 위해 이만큼 했습니다’라는 자기 의(義)가 쌓여갈수록,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설 자리를 점점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성취 지향적 신앙의 끝에는 깊은 공허와 영적 탈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실상은 ‘나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욕망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4.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이러한 인간의 결핍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계획을 막으시는 것을 넘어, 정반대의 약속을 주십니다. 역대상 17장 10절 하반절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내가 또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집(성전)을 짓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위해 집(왕조)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가지는 아이러니함입니다. 이 선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문제 해결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보여주십니다. 다윗의 부족함이나 문제는 자신의 행위나 업적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불안한 미래, 그의 유한한 존재의 가벼움은 오직 하나님의 영원하고 신실하신 ‘약속’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가 무엇을 하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계획이 멈추고, 우리의 모든 자랑이 무너진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지점인 것입니다. 우리의 안식과 평안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노력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설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안정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5. 은혜를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
다윗에게 주신 이 놀라운 약속,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겠다는 그 ‘영원한 집’은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드려 영원한 성전을 세우셨고, 우리 자신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은혜의 원리를 제자들에게 몸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하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다윗과 똑같은 실수를 합니다. 그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 차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라고 외칩니다. 스승을 위한다는 그의 열심, 스승을 섬기려는 그의 선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는 제자가 스승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나라가 아니라, 왕이신 스승이 베푸는 은혜를 전적으로 받는 나라였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길은 그의 열심과 섬김이 아니라, 예수님의 씻기심을 받는 것, 즉 은혜를 겸손히 받고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베드로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 의를 즉시 내려놓고, 구원을 위해 전적으로 예수님의 은혜에 자신을 맡깁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의 모습은, 자신의 성전 건축 계획을 내려놓고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라고 기도한 다윗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나의 열심이 아니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가장 낮은 자세로 겸손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6. 우리의 계획을 넘어, 하나님의 약속을 사는 삶
다윗과 베드로의 이야기는 "성취"라는 우상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줍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나의 집’을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세우신 ‘그의 집’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자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자세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처럼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계획으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인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이삭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나의 지혜로 만든 ‘이스마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넘어서는 ‘이삭’을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계획이 막히고, 현실의 벽 앞에서 절망할 때, 아브라함처럼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음으로 붙드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사도 바울처럼 나의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회심 이전의 사울은 누구보다 자신의 의와 열심, 그리고 율법적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모든 자랑과 업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금껏 사울이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믿었던 모든 일이 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모든 것에서 완전히 파산한 자리에서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비로소 은혜로만 살아가는 새로운 존재, '바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세상의 성공이나 교회의 직분, 사역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죄인이었던 나를 부르셔서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우리의 영원한 가치와 정체성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 베드로, 아브라함, 바울 모두 자신의 계획과 열심이 멈추는 곳에서 하나님의 진짜 은혜를 만났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위해 세웠던 나의 거창한 계획들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이기에”라고 겸손히 고백하며, 나를 위해 영원한 집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약속 안에서 참된 자유와 감사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 함께 하는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나의 힘과 성취로 집을 지으려던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나는 누구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이토록 누릴 수 있었습니까?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오니, 나의 모든 계획을 멈춰주소서. 나를 위해 영원한 집을 세우신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주의 약속만 신뢰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